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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발자 면접 망친 썰 - Big3 SI

인생 첫 기업 면접을 다녀왔다.

나름 하반기를 열심히 준비해서 자소서만 30개 넘게 썼지만, 유일한 서류합격 및 필기 합격으로 이루어진 면접이었다.

흔히 BIG3라 부르는 대기업 SI업체였다.

그리고 대차게 말아먹었다!

면접이 끝난 뒤 사옥을 나오고 나서 도저히 힘이 안 날 정도로 말아먹었다.

심지어 비까지 조금씩 내려서 더욱 처량했다.

면까몰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떨어진 게 확실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보통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python core에서 dictionary 자료구조가 어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돌아가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이 나오면 신입은 절대 만족스러운 대답을 낼 수 없다.

면접관도 당연히 이 사람의 지식의 밑천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려고 내는 질문일 뿐이다.

물론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면 엄청난 득점이겠지만, 솔직하게 모른다고 해도 별 문제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갈등 경험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라는 기출 질문을 스스로가 망쳤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까고 볼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나오고 나서 정말 많이 침울했던 것 같다.

도와준 사람들에게 많이 연락도 하고, 위로도 많이 얻었다.

나보다 더 빨리, 오랜 기간 취준을 해온 친구들이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한 번 면접을 망친 것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인데,

한 분기마다 몇 번이고 면접에 가고, 몇 번의 실패를 겪었을 텐데, 나는 정말 준비가 없었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첫 기업 면접, 그것도 공채 면접에서 붙으면 그 사람은 정말 난 놈인 거라고 한다.

나는 난 놈은 못 될 것 같다.

어째서 나는 실패했는지 한번 되돌아봐야지.


왜 실패했을까?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지나친 자신감

  2. 첫 번째 기업 면접이라 뭘 준비해야 할 지 몰랐다

  3. 그 자신감이 면접 중간에 꺾였다…

그럼에도 이번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할지 깨달은 것 같다.


준비 안 해도 잘 할 줄 았았다…

나는 기업 면접이 완전 처음이었다.

중소 기업, 스타트업, 서비스, 은행 모든 걸 넘어서 처음 면접이었다.

대학 면접, 알바 면접, SSAFY, SSAFY 실습코치, SW마에스트로 면접 등은 있었다.

그리고 이 중, 알바 빼고 모든 면접을 한 번에 붙었다.

그래서 준비를 안 해도 가서 알아서 잘 할 줄 았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나치게 강했다…

그도 그럴듯, 사실 SSAFY 실습코치는 말 잘하고 사회성 좋은 사람을 뽑는다.(물론 개발 실력 검증과 내부 레퍼런스 체크도 진행한다.)

실제로도 수 십, 수 백명의 교육생 앞에서 발표하거나 이야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나는 그런 자리에서 떨리지 않고 말을 하는 편이다.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발표도 내가 진행을 했다.

또한 100명이 넘게 참여한 온라인 세션에서 Django, FastAPI, Flask 등

python 백엔드 프레임워크의 기초 강의를 실시간으로 진행한 경험도 있을 정도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 발표 잘 하잖아~ 면접도 잘 하겠지~”라는 평가도 대단히 많이 받는다.

면접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자, “네가 면접을 망쳤다고?”라며 놀랐을 정도였다.

나는 대외적으로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 잘하고 아는 거 많고, 비전공자 중에선 탑티어 개발자였다.(무슨 엄친아도 아니고)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안 그래도 촉박한 면접 준비 기간 동안 밀도 있는 준비를 못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과신과 자신감을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첫 기업 면접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요했다.

인맥은 잘 쌓은 편이라 그런지, 해당 기업의 현직자에게도 도움을 받았고

이미 취업한, 함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거의 10명 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면접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조언들이 크게 와닿지 못했다.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

다행이라면, 앞으로의 면접에서도, 그리고 삶에서도 중요한 여러 습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괄식으로 말하기

나는 국문학과 출신이다. 그것도 문예창작도 함께 배우는 국문학과였다.

당연히 글을 꽤 쓴 편이다.

그리고 보통 산문쟁이는 두괄식을 잘 쓰지 않는다.

문학의 핵심은 비유상징이기 때문에, 두괄식으로 결론을 먼저 말하지 않는 편이다.

시작부터 충격을 주기 위해 직설적인 문장으로 상황을 극대화 시키는, 한정적인 경우에서나 두괄식을 쓴다. (이 문장도 미괄식이다.)

보통 보다 치밀한 묘사와 상징을 통한 비유빌드업한 뒤, 결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방식은 정확하게 면접의 말하기 방식과 대척점에 서있다.

결론을 말한 뒤, 팩트를 근거로 주장을 보충하는 방식

묘사로 빌드업 한 뒤, 결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면접관은 당연히 전자의 방식을 선호한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이 사람에 대한 팩트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 빌드업을 들어줄 시간도 없고, 은유와 묘사는 팩트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면접자가 진실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친구들과 형들이 두괄식으로 바꾸라는 이야기를 해줬고, 평소의 말하기에서도 이를 의식하며 바꾸고 있지만,

수 년 간 쌓아온 습관이 빠르게 변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현재도 노력하며 두괄식으로 말하며, 부가적인 설명은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면접관이 궁금하게 말을 해야한다.

나는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하려면, 여기까지도 말해줘야 한다! 라는 강박이 심한 편이다.

좋은 면접 스킬은 나의 경험에서 면접관이 궁금해할만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면접관이 이 부분에 대해 파고들 여지를 주도록 만드는 것이라 한다.

앞서 말했듯 빌드업-결론 방식은, 면접관이 들어주기 힘들 뿐만 아니라

면접관들이 궁금해 할만한 부분을 먼저 말해버리기 때문에

면접관이 꼬리 질문으로 파고들 여지를 주기 힘들다.(물론 기술 질문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궁금한 게 없으면, 결국 별 영양가 없는 기출 인성 질문이나 자소서 질문만 들어오게 되고,

한정된 시간 동안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게 된다.

이번 면접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가 많았다.
면접관이 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결국 기출 문제에 대해서만 답변하고 온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 자신감은 무조건 중요하다.

공채에서는 무조건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보통 규모가 있어야 공채를 진행하고, 그렇게 뽑힌 신입사원에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미 기술이 완벽할 것이란 기대는 절대 없고, 선임에게 잘 배울 수 있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즉, 공채 면접은 기술적으로 꾸준히 학습해왔는지, 발전해왔는지

인성적으로 말을 잘 듣고, 조직과 불화없이 지내는지를 파악하는 자리인 것이다.

(물론 테크 기업이면 즉시 투입하기 위해 그냥 죽어라 기술만 물어본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관련 지식이 있고, 조직에 순응하는 말 잘 듣는 사람임을 어필해야 한다.

자신감은 기술을 배울 수 있음을 나타내며, 겸손은 조직 생활에 적합함을 보여준다.

다행히 이 부분은 잘 보여줬던 것 같다.

어째서 귀사에 적합할지, 어떤 기술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어필을 했다.

가뭄에 콩나듯 들어온 기술 질문에 대해서도 비교적 나쁘지 않게 답변했다.

지나치게 많이 적어둔 기술 스택에 대해서는, 정말로 자신있는 기술들만 골라 답변했다.

다만, 인성 관련 기출 질문에 대해서는 횡설수설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면접관과 번갈아가며 눈을 마주치고 웃는 얼굴에 큰 목소리로 답변했다.

문제는, 두 번째 세션을 망쳤다는 생각에 세 번째 세션에서 넋이 나간 채로 진행했던 것이 너무 아쉽다.


그럼에도 화이팅

취업 포기 청년이 50만에 근접하다는 뉴스가 나온다.

많은 또래 친구들이 취업에 좌절하고 있고, 나 또한 많이 좌절했다.

하지만 뉴스와는 달리 취업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사람은 아직도 넘쳐난다.

내 주변도 다들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에 잘 가고 있다.

0명 대를 뽑으면서 2000명이 지원하는 미친 경쟁률이지만,

주변은 다 그걸 뚫고 가고 있다.

나라고 못 가겠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지잡대 국문과 출신도 3대 기업을 어떻게든 뚫을 수 있음을 증명되었다.

이번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다시 열심히 달려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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